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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자급 국가, 왜 진흙을 먹게 됐나

오우정 2010. 1. 25. 16:00

쌀자급 국가, 왜 진흙을 먹게 됐나
박정남 (bitmos92)

 

"이미 저는 여기서 죽기로 결정을 했어요. 저는 여기 살 겁니다."

 

아이티 사랑의 교회 백삼숙 목사가 며칠 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분은 지금 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진 아이티에 살고 있다. 내가 아이티, 그리고 백삼숙 목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 초, 세계를 휩쓴 식량위기의 최전선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1월 12일(현지시간) 아이티에서 진도 7이 넘는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었지만 그곳이 어떻게 됐을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2008년 기자가 취재갔을 당시의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 박정남
아이티 지진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강진으로 붕괴된 건물의 모습.
ⓒ 월드비전
아이티

태양밖에 없는 시테솔레, 도미노 같은 집들

 

백삼숙 목사의 주 사역지는 수도 포르토프랭스 최대의 빈민가인 '시테솔레'다. 우리말로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태양 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직업도 없다. 그저 하루에 1달러 이하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빈민들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온전한 집 한 채 있을 리 없다. 집이 한 채 서면 그 옆집은 그 집에 기대어 지어진다. 그렇게 계속 집을 이어 짓는다. 집 한 채에 모든 집들이 기대어 있는 형국이다. 당연히 조금만 흔들려도 모든 집이 무너진다. 지진 속보를 들었을 때, 그때 봤던 빈민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머릿속으로 그려서는 안 되는 그런 그림들이. 다음날 들은 소식은 내가 떠올렸던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처참함이었다.

 

취재 당시 아이티는 모든 생필품의 가격이 일주일에 두 배씩 오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나라 전체가 자가 생산보다는 구호물자에 의해 살아가던 아이티는 국제 식량 가격 폭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그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하나 있었는데 길바닥과 건물 옥상에 죽 깔린 지름 12센티미터 정도의 동그란 원판이다.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진흙쿠키'다. 그들은 그걸 먹는다. 이것은 진흙모양의 쿠키가 아니라 채에 거른 진흙에 소금과 마가린을 조금 섞어 햇볕에 말려 먹는 진짜 진흙쿠키다.

 

  
길바닥과 건물 옥상에 죽 깔린 지름 12센티미터 정도의 동그란 원판. 진흙쿠키다.
ⓒ 박정남
아이티 지진

  
진흙을 먹는 아이들.
ⓒ 박정남
아이티 지진

이 황당한 음식을 아이들은 간식으로 먹고 있었다. 그나마 허기를 달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음식 아닌 음식도 식량위기로 인해 가격이 매주 두 배씩 오르고 있었다. 내가 취재 가기 한 달 전에 MBC <더블유>(W)에서 '가난으로 빚은 빵 진흙쿠키를 아시나요?'(이모현 피디 연출)를 보았지만 내 눈앞에서 진흙을 그냥 먹는 아이들을 보니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쌀자급 국가에서 진흙쿠기 먹는 나라 된 이유

 

피디라는 직업을 택하고 험한 곳에 많이 다닌 편이었지만 당시 아이티에서 본 상황은 정말 처참했다. 밀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4일 만에 문을 연 빵공장에서 빵을 구해 백삼숙 목사와 함께 시테솔레를 방문했다. 배급을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모든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빵을 한 조각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몸을 던졌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거의 매일 물가폭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시장은 방화로 불에 타서 제 역할을 잃은 지 오래고, 그나마 문을 연 가게도 폭등한 물가로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시장에서 파는 미국산 쌀은 당시 20킬로그램에 우리 돈으로 3만 4천원이었는데, 얘기를 들으니 일주일 만에 8천원이나 더 올랐다고 했다. 국민 대부분이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중남미 최빈국에서 가장 부자 나라의 쌀을 비싸게 사먹는 꼴이었다.

 

  
쌀 자급국가에서 세계적 빈민국으로 전락한 아이티.
ⓒ 박정남
아이티 지진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강진으로 커다란 피해가 발생되자 아이티 주민들이 구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월드비전
아이티

사실 아이티는 1980년대까지 쌀을 자급할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 미국에 쌀을 개방하면서 아이티 쌀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농사를 포기한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와 시테솔레와 같은 빈민촌에 정착했다. 하지만 도시에서도 그들은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직업을 줄 만한 산업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앞과 뒤가 모두 막힌 암담한 상황인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아이티는 거의 모든 국가 경제를 원조에 의존한다. 원조가 끊어진다는 것은 곧 국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얘기다. 당시 취재에서 만난 세계식량기구(WFP) 관계자는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라는 얘기만 했다. 준비된 식량이 겨우 2개월 치 정도인데 그 이후에 대한 대책은 준비된 것이 없다고 했다.

 

고통은 가장 약한 자를 제일 먼저 찾는다

 

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취재를 마치고 귀국해 방송을 내보냈다. 다행스럽게 시청자 반응도 좋았고, 아이티 사람들을 후원하겠다는 분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이티에는 고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 해에만 허리케인이 네 차례나 아이티를 덮쳤고,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지진까지 발생했다. 이미 사망자가 10만, 20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약탈, 폭동, 절망이 뒤엉킨 생지옥과 같은 상황이라는 말도 들린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과 식량을 찾아 수만 명이 걸어서 옆 나라로 피난을 가고 있다고 한다.

 

당시 내가 만들었던 방송의 제목은 "고통은 가장 약한 자를 제일 먼저 찾는다"(2008년 4월, MBC <W>)였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불쌍해서 눈물이 나오는 사람들을 왜 신은 그렇게 모질게 몰아붙이는지 모르겠다.

 

  
2008년 MBC 로 방송된 '고통은 가장 약한 자를 제일 먼저 찾는다'의 한 장면.
ⓒ 박정남
아이티 지진

  
2008년 4월 MBC 로 방송된 '고통은 가장 약한 자를 제일 먼저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