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지리산 자락 산청 함양 맛집들

오우정 2009. 11. 11. 17:15

산청맛집^^


지리산 재료에 원숙한 손맛까지

◆산채정식

산청군 '춘산(春山)식당'에서 맛본 음식은 의외였다. 산악지역 특유의 소박한 상차림을 기대했는데, 넉넉하고 다채롭다. 그만큼 지리산의 품이 넉넉하기 때문일 것이다.

춘산식당은 1976년 이순이(76)씨가 열었다. '지리산의 봄을 밥상 가득 올리겠다'는 뜻을 담았다. 이씨는 친어머니가

운영하던 '풍미관'에서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도우며 배웠다.

산청 '춘산식당' 흑돼지불고기(앞)와 비빔밥.


가을이 저만치 보이는 늦여름, 춘산의 밥상을 받았다. 정식은 3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하다고 해서 비빔밥을 시켰다.

된장콩잎, 가죽나물, 취나물, 콩비지, 마늘선, 고구마줄기무침, 물김치, 저냐 등 반찬이 10여 가지나 된다. 멍게에 청어알을 무쳐 삭힌 젓갈, 꼬막 등 바닷가 반찬도 있어서 놀랐다. 식당에서 일하는 '할매'는 "삼천포가 멀지 않다"고 했다.

경상도 사람들은 맛을 모른다고들 하는데, 이 식당만큼은 예외로 해야겠다. 모든 음식이 간이 충분히 배 있으면서도

짜지 않다. 균형이 절묘하다. 전라도처럼 화려하게 멋 부리진 않았지만, 정갈하고 우아한 기품이 있다. 모시 적삼

갖춰 입고서 허리를 꼿꼿이 편 종갓집 종부 같은 맛이다.

비빔밥에는 달걀 지단과 각종 나물, 다진 쇠고기 따위가 고추장과 함께 새하얀 밥에 얹혀 나온다. 고명도 고명이지만 밥이 기막히다. 고슬고슬 엉기지 않아 다른 재료들과 쉬 섞인다. 쫄깃하달 정도로 차지고 달다. 이 식당에서는 산청 '탑라이스(Top Rice)'만을 사용한다. 탑라이스는 산청의 쌀 브랜드.
서울 백화점에서도 인기 높다. 탑라이스 생산단지

회장 오대환씨는 "완전미(完全米) 비율이 95% 이상인데다, 단백질 함량이 6.2% 이하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완전미란 깨지지 않고 온전한 모양을 유지한 쌀이란 뜻. 쌀에 깨진 부분이 있으면 익히는 과정에서 전분이 흘러나와 밥맛이 나빠진다. 영양학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지만, 단백질이 많으면 밥맛이 떨어진다. 국내산 쌀은 대개 완전미 비율은 85% 정도이고 단백질 함량은 7%가량이다.

흑돼지양념구이도 훌륭하다. 산청에서 키운 흑돼지의 삼겹살을 살짝 데쳐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식당 앞 연탄 풍로에 구워서 상에 올린다. 꼬들꼬들한 껍데기가 붙은 돼지고기와 달콤매콤한 양념이 아주 어울린다.

쉬는 시간에 찾아가 밥 달라는 손님이 귀찮을 법도 한데, 웃는 얼굴로 음식을 내주는 할머니들 덕분에 더 기분 좋은 밥상이었다.

비빔밥 6000원, 정식(3인분 이상 가능) 1인분 1만5000원, 흑돼지불고기 2만5000원(3~4인분), 추어탕 6000원.

●춘산식당: 경남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444-1 (055)973-2804


◆한방요리

산청은 허준의 스승 류의태의 고향이다. 산청군은 이를 내세워 산청을 '약초의 고향'으로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물론 지리산에서 나는 다양한 약초와 나물을 생각하면 억지는 아니다. '한방식당'을 표방하는 식당이 엄청나게 많다. 이 중 '갑을식당'(한방닭백숙), '시골별장식당'(맥문동 호박백숙), '세검정가든'(약초정식) 등이 괜찮다는 평이다.

●갑을식당: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23 (055)973-0053

●시골별장식당: 경남 산청군 시천면 동당리 520-3 (055)973-6066

●세검정가든: 경남 산청군 금서면 주상리 502 (055)973-6564



산청 흑돼지 삼겹살.


참기름 울리는 고소함의 절정

◆흑돼지

지리산 자락 돼지들은 다 맛있는 것으로 소문났다. 청정자연에서 키우는 똥돼지의 맛은 비교할 수가 없는 경지. 그러나

요즘 산청에서 자라는 흑돼지는 '똥돼지'라 불리던 토종돼지는 아니다. 산청군청 농업기술센터 민형규씨는 "지난 20년

동안 전국 각지의 흑돼지를 모아 개량한 품종"이라고 했다. 토종 흑돼지는 육질이 좋지만 새끼를 적게 낳고 살이 덜 올라 경제성이 떨어졌는데, 이런 부분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흑돼지와 누렁이'에서 맛본 삼겹살은 쫄깃한 껍질이 붙어 있고 고소했다. 산청군 안에는 '흑돼지'를 내건 식당이 많다. 아직 군 차원에서 산청산 흑돼지만 쓴다는 인증을 해주지는 않는다.

●흑돼지와 누렁이: 경남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 128 (055)973-8289

 

함양맛집^^

 

점잖은 갈비맛… 역시 양반음식
안의 갈비

'안의원조갈비집'을 찾았을 때 주인 김대영(42)씨는 부엌 옆 작업실에서 쇠갈비를 다듬고 있었다. "최대한 지방을 잘

제거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갈비에서 지방 발라내는 작업을 하지요. 이 작업이 (식당) 장사하는 것보다 힘들어요."

함양 '안의원조갈비집' 갈비찜.

함양군 안의면(安義面)은 갈비찜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갈비찜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일곱 집이나 된다. 이 한적한

마을에 갈비찜을 하는 식당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안의가 지금은 함양군 안에 있는 면 중 하나지만, 예전에는 안의현(安義縣)이었지요. 안의현 안에 거창도 있고 함양도 있었어요. 현감이 여기 살았고, 그래서 정자며 기와집 같은 고택이 많아요. 양반들도 많이 살았죠. 양반들이 자시던 게 안의갈비라고 합니다. 또 예전에 이곳에서 큰 우시장이 열렸어요.

갈비탕이 더 유명했는데, 요즘은 갈비찜으로 알려졌죠."

일주일에 서너 번 갈비 여덟 짝이 들어온다. 갈비를 일단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낸 다음 지방을 발라낸다.

갈비를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다음 삶는다. 남아있던 피와 지방이 우러난 물은 버린다. 찬물을 붓고 다시 끓인다.

센 불에 30분 끓여 냄새를 없앤 다음 갖은 양념을 더해 서서히 달인다.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음식들이 조금 촌스럽지요."

김대영씨 말처럼 안의갈비찜은 세련되진 않지만, 대신 옛맛을 지키고 있다. 갈비답게 뜯는 맛이 있다. 심심하면서 달착지근한데, 간장 짠맛이 아래 깔려 있다. 기름지지 않고 깨끗하다. 1960년대 음식 같기도 하고, 북한 음식 같기도 하다.

갈비찜도 갈비찜이지만 갈비탕이 아주 훌륭하다. 갈비탕 맞나 싶을 정도로 기름기 없이 투명하고 시원하다. 무미(無味)하다 싶지만,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감칠맛이 확 올라온다. 잡내나 잡미가 거의 없이 후추의 후끈한 매운맛만 느껴진다.

갈비찜 3만5000·4만5000원, 갈비탕 8000원. 공깃밥(1000원)을 시키면 갈비탕 국물이 딸려나온다.

●안의원조갈비집: 경남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12-1 (055)962-0666

 

 

 

생선국과 만난 소면… 그냥 넘어간다
어탕국수

식당 이름이 '조샌집'이다. 시어머니 임명자씨에 이어 주방을 맡고 있는 김윤점씨가 이름의 유래를 설명해줬다. "시아버님(조인혁)이 생원이셨어요. 우리 지역에선 생원이 스스로를 낮춰 '샌'이라고 불렀대요. 시어머니가 식당을 관청에 등록하러 갔는데, '조샌이 하는 식당이니 조샌집이라고 하라' 해서 했다네요."

함양 '조샌집' 어탕국수.

어탕국수는 함양과 산청에서 즐기는 음식이다. 민물고기를 잡아다 끓인 다음, 체에 뼈를 발라내고 살은 잘게 부수어

국물과 섞고 고춧가루로 슬쩍 간 한다. 시래기를 넣고 푹 끓이다가 소면을 넣고 익히면 끝.

불그스름한 갈색 국물이 의외로 맑고 구수하다. 생선 비린내가 살짝 나는데, 거북하다기보다 오히려 매력적이다.

제피가루(초피나무 열매의 가루)와 방아잎으로 생선 냄새를 잡는다. 추어탕은 민물고기와 함께 미꾸라지가 들어간다.

더 짙은 갈색이고 국물도 더 진하다.

"우리 가게를 소개한 기사를 붙여놓지 않아요. 시어머니가 그러시대요. '손님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쩔 거냐'고."

참 '갱상도'다운 마음가짐이다. 어탕국수 5000원, 추어탕 6000원, 민물고기조림 2만5000원.

●조샌집: 경남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5-5 (055)963-9860

 

 

곰국에 빠진 콩잎… 푸근함이 입안을 감싸네
콩잎곰국

콩잎은 경상도에서 즐겨 먹는 재료다. 함양에서는 콩잎을 곰국에도 넣는다. '청학산' 주인은 "콩잎곰국을 옛날부터 보양식으로 드셨다"고 한다. "부잣집에서는 사골을 고아서 넣어 드셨고요, 서민들은 들깻가루에 넣어 드셨어요."

함양 '청학산' 콩잎곰국.

봄철 여린 콩잎을 따 말려서 저장해두고 일년 내내 쓴다. 뽀얗게 우린 곰국 국물에 콩잎을 넣고 삶은 쇠고기를 쪽쪽 찢어서 얹으면 요리 끝이다. 콩잎에서 물이 우러나 뽀얀 국물이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푸른 이파리가 잔뜩 들어 있는 게 미역국 같기도 하다. 밥과 함께 국물을 푹 떠서 입에 넣는다. 살짝 씁쓸하면서도 구수한 콩잎이 곰국과 썩 어울린다. 콩잎곰국과 함께 나오는 반찬도 조신하다. 콩잎곰국 8000원, 콩잎곰국정식 1만3000원, 청국장 6000원, 시래깃국·된장국 5000원.

●청학산: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 641 (055)962-4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