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기행

춘천 닭 갈비

오우정 2009. 9. 17. 09:04


빨간 양념을 ‘척’하고 얹은 뒤 빠르게 볶아대는 현란한 손놀림.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면 매콤한 연기에 "에취"재채기가 나온다. 그러나 코끝을 자극하는 그 매콤한 냄새는 이내 ‘언제 익나’하며 조바심을 들게 한다.

닭고기, 쫄깃한 쫄면 사리, 고소한 밥까지 차례로 볶아 싹싹 긁어먹고 나면 ‘으악, 또 과식’으로 머리 속이 혼란스럽다. 그래도 눈, 코뿐 아니라 입도 배도 즐거운 음식은 역시 닭갈비다. 닭갈빗집 앞에는 '춘천'이란 지명이 빠지질 않는다.

특히 춘천에서 가까운 서울의 닭갈빗집은 더욱 그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춘천닭갈비의 모습은 이렇다.

뼈 없는 닭고기를 양배추, 고구마를 비롯한 가지각색의 채소와 함께 철판에서 볶아낸다. 그러나 ‘진짜’ 춘천닭갈비는 다르다. 뼈가 붙은 채로 포를 뜬 닭갈비에 양념을 발라, 숯불에 오롯이 구워내는 것이 원형이다. 떡과 고구마는 물론 양배추 한 조각도 들어가지 않는다.


강원도 춘천시의‘원조 숯불 닭 불고기’는 춘천 닭갈비의 원형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곳이다. 4개의 드럼통 탁자로

꽉 찬 좁은 공간. 들어서면 재채기부터 나온다. 매캐한 숯불 연기가 진동해서다. 여름이라면 ‘찜질방에 온 셈 치자’

란 각오는 필수다.

에어컨은 있지만 ‘불이 날린다’며 켜지 않는다. 낡은 드럼통 위 숯 화로에 석쇠를 걸치고 닭갈비를 굽는다. 요즘사람들을 위해 파는 '뼈 없는 닭갈비'는 영계의 다릿살만을 발라 쓰고, 원조격인 '뼈 있는 닭갈비'는 노계를 뼈째 쓴다. 뼈 없는 닭갈비는 야들야들하고, 뼈있는 닭갈비는 씹는 맛이 있다. 둘 다 숯불 덕분에 기름기 쭉 빠진 담백한 살에 매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절묘한 맛이 난다.

1950년대 초 전남 담양에 한 노부부가 살았다. 여기저기 빚을 져 갚을 길 막막했던 부부는 각지를 떠돌다 춘천까지 흘러 들어왔다. 부인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요릿집을 했던 경험을 살려 식당 열 결심을 했다.

평범한 돼지갈비나 소갈비 말고 닭을 양념해 갈비처럼 팔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뼈를 그대로 붙인 채 포를 떠 고추장 발라 구운 닭갈비를 막걸리와 함께 팔기 시작했다.

가게가 있던 곳은 춘천시 삼천동의 판자촌. 그 판자촌 앞엔 택시 차고가 있었다. 택시 기사들이 하나 둘 들르기 시작했고, 어느덧 손님까지 모시고 오며 입소문이 났다. 1961년 판자촌일대가 재개발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71년, 당시 34살이었던 부산 출신의 배계선(72) 할머니는 이곳 주방에 취직했다. 일한 지 몇 달이 지나도 부부는 임금 줄 생각을 안 했다.

참다못한 배 할머니가 “그만 두겠다”고 말하자 그제야 붙잡으며 제안을 했다.“밀린 두 달 치 자릿세를 대신 내 주면 가게를 물려 주겠다”고. 장사는 잘 됐지만 주인부부의 씀씀이가 컸던 탓이었다.

결국 손님들에게서 받은 팁을 모아 뒀던 돈으로 밀린 자릿세를 내 주고 가게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배 할머니는 70년대를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우리 집에 졸병들은 출입금지였어. 장교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았는데 졸병이 무서워서 어디 들어올 수 있었겠나?”


가게 옆으론 춘천고 학생들도 많이 다녔다. 돈은 없지만 식욕만큼은 왕성했던 고등학생들은 닭갈비 냄새에 취해 “야, 네가 사라!”라고 장난치며 서로 가게로 밀어 넣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또 지금은 자리가 없으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려야 하지만 그땐 달랐다. 둘 씩 온 손님들에게“합석 좀 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흔쾌히“그럼요”라고 답했기 때문이다.

두 명이 네 명이 되고 네 명이 여섯 명이 돼 한 탁자에서 어울리는 광경은 예삿일이었다. 할머니는‘자기 닭갈비’를

구분하기 쉽도록 손님 앞에 갈빗대 3개를 삼각형 모양으로 놓아 주었다. 현재는 그램 수로 따져 1인분(400g)씩 내지만 당시엔 갈빗대 3개가 1인분이었다. 2007년 배 할머니는 조카인 김명자(48)씨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닭갈비 8000원. 뼈 없는 닭갈비 9000원. 강원도 춘천시 중앙로. 033-257-5326


철판 닭갈비 맛은 네 가지로 결정난다. 불, 양념, 고기, 사리다. 1994년 개업해 강남역 일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춤추는 닭갈비’의 매니저 심현구(32)씨 설명을 참고해 정리했다.



중불- 강불- 약불 순으로 볶아준다. 처음부터 강불에 볶으면 양배추에서 물이 우러나오지 않고 타버린다. 약불에 볶아도

숨이 죽지 않아 역시 물이 안 우러나온다. 물이 우러나오면 그 때부턴 다른 채소들이 퍼지지 않도록 강불에서 단시간에 볶아낸다. 단, 육수를 따로 붓는 집에선 처음부터 강불로 볶아야 한다. 육수가 있는데도 중불로 볶으면 닭볶음탕처럼 돼버리기

때문.

양념
집집마다 천차만별.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배, 양파, 대파, 생강, 마늘, 소주 등을 넣는다. 단맛을 내기 위해 물엿을

쓰는 곳도 있다.

고기
‘영계, 노계’와 ‘국산, 수입산’의 여부가 중요. 보통 부화 후 35일이 지나지 않은 닭을 쓴다. 영계 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는 것은 11호. 1.1kg짜리다. 그러나 ‘원조 숯불 닭 불고기’의 배계선 할머니는“뼈있는 닭갈비는 일부러 6개월 이상 된 노계를 쓴다”고 말했다.

“노계는 질겨서 치아가 좋은 사람 아니면 못 먹어. 그래도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나”라고 덧붙였다. 노계를

쓴 뼈있는 닭갈비에선 실제로 구수한 맛이 났다. 국산은 부드럽고 살이 얇다. 미국 등 수입산은 두껍다. 그래서 ‘씹는 맛’을 이유로 수입닭을 쓰는 집들도 있다. 브라질, 필리핀, 태국 등 따뜻한 나라의 닭이 더 맛있다는 설도 있다.

사리

사전적 의미는 ‘국수 등을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 닭갈빗집에선
고구마와 떡은 물론 낙지, 쭈꾸미 등 다양한 재료를 사리라 칭한다. 필수는 양배추와 고구마. 양배추는 다른 채소보다 단단하면서도 수분이 있어 쉽게 무르거나 타지 않는다. 심심하면서도 단 듯한 맛 역시 매운 닭갈비 양념과 잘 어울린다. 고구마도 잘 안 퍼지며 단 맛이 나 닭갈비 양념과 어울리는 재료다.

‘닭갈비 원조’ 60년대엔 소금구이로 시작했지

춘천시 명동엔 닭갈비집 19개가 밀집한 골목이 있다. 초입의‘원조 중앙닭갈비’를 운영하는 이송금 할머니는 숯불에서 연탄불을 거쳐 현재는 가스불 철판닭갈비를 팔고 있다. 닭갈비 변천사의 산 증인인 것이다.

“1960년 경 시오야키(소금구이)로 시작했어. 11살 때까지 일본에 살았거든. 그러다 간장도 발라보고
고추장도 발라보고 했더니 손님들이 좋아하는 거야. 숯불에서 연탄불로 바꿨는데 둘 다 연기가 워낙 많이 나야지. 그래서 70년대 후반에 철판으로 바꿨어. 손님들도 냄새가 덜 밴다고 좋아하더라고. 뼈 없는 닭갈비는 판지 한 15년 됐어. 손에 안 묻는다고 다들 좋아 했지.”

채소를 넣기 시작한 것 역시 철판으로 바꾸면서였다. 강원대 학생들이나 휴가 나온 군인 등 주머니 가벼웠던 손님들은 푸짐한 채소의 등장에 환호했다. 여럿이 와서 고기는 1인분만 시키고 할머니를 졸라 채소와 우동 사리만 시켜먹었다. 반찬인 김치를 자꾸 더 달라고 해 철판에 볶아먹던 사람도 많았다. 당시 학생들이 돈 대신 놓고 갔던 시계며 책들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외국인들은 왜 닭갈비를 좋아할까?

명동 등 외국인 밀집지역에서 외국인들에게“한국음식 중 무엇을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열에 서넛은 닭갈비를 꼽는다.

대표 한식인 불고기나 김치가 아닌, 닭갈비는 의외의 결과다. 한국에 온지 3년 된 닭갈비 마니아 에릭(Eric ·32),

1개월 돼 아직 한 번도 닭갈비를 맛본 적 없다는 니조니(Nizhoni·22). 두 미국인들과 함께 닭갈비를 시식하며 이유를 들어봤다.

니조니:“와우! 떡이다. 쫄깃쫄깃한 맛에 떡을 좋아한다. 그런데 닭갈비에 들어간 이 떡엔 양념이 베어서 더 맛있다”

에릭:“미국에서 멕시칸 음식을 즐겨 먹었는데 느낌이 비슷해 친근하다.
닭고기 자체도 누구에게나 친숙한 재료다.

특히 닭갈비는 고기인데도 기름지지 않아 좋다. 부담 없고 가볍다. 다이어트 중에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니조니:“여럿이 와서 먹기 딱이다. 모임에 어울린다. 미국에선 이렇게 식당에서 앞에 두고 불을 켠 채 직접 볶아가며

먹는 음식이 흔치 않다. 그래서 재밌다. 마치 부엌에 있는 기분이다. 미국에 이런 곳이 있다면 내가 다 볶아 친구들 접시에 덜어주며 요리사가 된 기분을 만끽했을 것이다”

에릭:“깻잎과 각종 채소향이 닭고기 냄새를 없애준다. 마지막엔 밥까지 볶아 먹으니 채소, 고기, 곡류를 골고루 섭취하는
영양식 아닌가? 영양균형이 잘 맞는 느낌이 좋다”

니조니:“미국에 있을 때 한국 친구들 덕분에 한식을 접해봤지만 닭갈비는 몰랐다. 알았다면 자주 먹었을 텐데.

가족들이 놀러 오면 꼭 데려올 거다.”

넘쳐나는 철판 닭갈비의 세계. 살아남으려면 ‘독특함’은 필수. 개성만점 이색닭갈비를 찾았다.


1. 묵은지 닭갈비

길쭉길쭉한 묵은지가 통째로 들어간다. 칼칼하고 아삭아삭한 맛이 난다. 뼈 없는 닭갈비를 묵은지로 돌돌 말아 먹는다. 신맛 나는 묵은지가 닭갈비의 느끼함을 없애준다. 8000원.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031- 417- 3391(뚱보네 묵은지 닭갈비).


2. 물 닭갈비

일부에선
강원도 태백이 닭갈비의 원조라고 말한다. 태백식 닭갈비는 솥뚜껑전골처럼 끓여내는 것. 일명 ‘물 닭갈비’다. 경기도에서도 이 물 닭갈비를 먹을 수 있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잘라 가래떡, 양파, 파, 감자와 함께 끓인다. 처음엔 닭볶음탕과 비슷해 보이지만 먹다 보면 국물이 졸아들어 어느새 닭갈비형태가 되어 있다. 채 썬 대파가 다량으로 들어가는데 파에서 단맛이 우러나온다. 2인분에 1만3000원.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031- 475- 5008(기절초풍 물 닭갈비).


3. 치테이토 닭갈비춘천집

얇게 썬 감자를 깔고, 모차렐라 치즈를 듬뿍 덮은 닭갈비다. 젊은 층에게 인기인데 ‘볶는다’보다 ‘굽는다’는 말이 어울린다. 닭갈비의 매운 맛과 감자의 담백한 맛, 쭉쭉 늘어지는 모차렐라치즈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다. 달콤한 칠리소스에 찍어 쌈무에 싸 먹으면 입안이 상쾌하다. 8000원.

서울시 서대문창천동. 02-323-5597(춘천집).

1. 왜 닭갈비라 부를까?

닭갈비철판 위에서 볶아지는 것은 분명 ‘갈비’가 아닌 ‘닭다리 살’이다. 그런데 왜 닭갈비라 부르는 것일까? 원래는 뼈가 붙은 채로 포를 떠 구워 먹었기 때문이다. 닭의 갈비뼈 부분만을 구웠던 것은 아니다. 다리, 날개, 몸통 등

전 부위를 썼다. 그러나 ‘잡고 뜯어먹을 수 있다’ 하여 닭갈비라 불렀다. 70년대 초 닭갈비 값은 1대에 100원 정도

였고, 그래서 ‘대학생갈비’ ‘서민갈비’라는 별명도 있었다.

2. 왜 춘천이 유명할까?

원조중앙닭갈비’ 이송금 할머니는 “1960년대부터
춘천양계장이 많았다. 명동을 중심으로 닭갈비집들이 많이

생겨난 건 70년대다”라고 말한다. 이종천(62) 경북유통 사장은 25년째 춘천 지역 닭갈비집들에 닭고기를 공급하고 있다.

역시 “지금은 다른 지역에도
대형양계장이 많지만 대부분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춘천은 예로부터 양계장이 많아

닭갈비가 발달한 것 같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매스컴을 타며 열풍이 불어 한때는 춘천시내 닭갈비집이 350개 가량 됐다. 조류독감 후 150개 정도 문 닫은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현재는 춘천에서도 대부분 철판닭갈비를 판다. 같은 철판닭갈비라도 춘천은 조금 다르다. 고기 토막이 더 크며 쫄면이

아닌 우동사리를 쓴다. 웬만해선 안 퍼지는 쫄깃한 우동사리는 춘천 지역 업자가 독점생산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