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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공동체 꾸미는 '이장'

오우정 2010. 1. 9. 10:58

[새내기 기자가 찾은 '희망 2010'] <5·끝> 생태공동체 꾸미는 '이장'

"친환경 마을 만들며 삶과 친해져" … 희망을 짓는 '젊은 바보들'
태양열 난방… 빗물탱크… 자연과 조화 역점
주민 "젊은이들 죽도록 고생한 덕에 살기 좋아"
"수입 적고 몸은 힘들어도 하고싶은 일 해 뿌듯"

한국일보 | 입력 2010.01.09 02:41 | 수정 2010.01.09 06:51 | 누가 봤을까? 40대 남성, 울산

 

2008년 6월 어느날, 전날 내린 폭우를 머금은 진흙이 발목까지 삼켰다.

난생처음 찾은 충남 서천군 판교면 등고리는 경사 35~45도의 산비탈이 마치 너울처럼 일렁댔다. 계단식 밭엔 푸른 푸성귀가 자라고 있었다. 생태공동체마을을 조성하는 사회적 기업 '이장(里長)'의 허진수(33)씨는 잠시 흔들렸다.

'경사를 평평하게 깎아내고 집을 지으면 편할 텐데….' 그러나 자연이 잉태한 환경을 고이 보존하는 것이 생태공동체의 지향점, 그는 짐을 싸 들고 다시 너울에 닿았다.


먼저 컨테이너를 지었다. 인부 20명이 행여라도 비탈을 흠집 낼까 봐 자신이 직접 삽을 들고, 지게차와 포크레인을 몰기도 했다.

간밤에 비라도 내리면 잠을 잊고 밤새 황토벽돌에 비닐을 씌웠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는 웅얼거렸다. "내 손으로 꼭 생태마을을 지을 거야." 그렇게 1년 반이 훌쩍 지났다.

전기요금과 가로등이 없는 마을

2010년 1월 6일, 높고 험한 고개 아랫마을이란 뜻의 등고리(登古里)는 어느새 '산너울 마을'로 이름까지 탈바꿈해 있었다. 예전의 비탈 진흙 밭엔 34가구가 경사를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틀 전 내린 폭설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지만 눈 무더기를 이고 있어야 할 지붕만은 신기하게도 깨끗했다.

그러고 보니 눈을 치우는 풍경이 사뭇 달랐다. 주민들은 마당과 골목은 제쳐두고 높다란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 지붕에 쌓인 눈부터 쓸어 내렸다. 신동석(71)씨가 사다리 위에서 몸을 몇 번 흔들자 지붕이 반짝이는 정체를 드러냈다. 태양광 판(집광판)이었다.

신씨가 "우리 동네는 전기요금이 없다니까"하고 웃는다. 이곳은 햇빛에서 얻는 월 평균 320㎾의 전력으로 가전제품 등에 전기를 댄다. 태양열로 데운 온수도 사용한다.

난방은 주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구들을 쓰고, 거실 화로에는 장작을 사용하니 '전기요금 제로'라는 말이 허언(虛言)은 아닌 셈이다.

가로등도 없다. 인공의 강렬한 빛(보통 140W)이 자칫 생태를 교란시킬까 봐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다만 높이 80㎝ 지점에 태양광 조경등(30W 미만)만 침침한 골목 가에 세웠다.

주민들은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반딧불이가 작년 여름부터 돌아와서 그리 어둡지 않다"고 너스레다. 본래 반딧불이는 주변이 어두워야 자신의 빛으로 먹이를 꾈 수 있는데, 문명의 발달로 밤에도 세상이 밝아져 사라진 측면이 있으니 주민들의 해석도 일리가 있다.

산너울 마을에만 있는 것도 있다. 자갈 흙과 갈대로 물을 정화하는 생태하수처리장과 빗물을 받아쓰기 위한 우수(雨水)저수탱크가 그렇다.

집집마다 쌓여있는 장작을 보노라면 이곳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너울을 닮은 자연지세를 그대로 살려 만든 산너울 마을은 이장이 꾸민 첫 생태공동체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장의 직원 허씨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젊은이 정말 죽도록 고생만 했지. 덕분에 살기 좋아."

젊은 바보들이 뿌리는 희망의 씨앗

이장은 노동부가 지정한 '생태마을 컨설팅 및 조성 부문'의 사회적 기업 1호다. 생태마을을 짓는 업체는 몇 곳 있으나 정부가 인정한 곳은 드물다는 얘기다. 회사 이름도 조성 뒤에 마을생활 관리 및 교육까지 도맡아 해당 마을의 이장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1999년 환경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농촌 100여 곳의 새 단장을 상담해줬고, 지난해 3월 산너울 마을을 완공한 후 현재 전국 3곳에 생태공동체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임경수(55) 이장 사장은 "생태공동체는 생태적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태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시설을 함께 나누고 만들어가는 마을"이라고 했다.

임 사장을 제외한 이장의 구성원(40명)은 대부분 젊다. 30명 정도가 20, 30대다. 관록이 재산인 건설업에서 이들의 도전과 꿈은 사실 생소해 보인다.

정해진 땅에 최대한 높게 짓는 게 돈을 버는 지름길일 텐데 이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심지어 직장마저 그만두고 이장에 합류한 이도 있다. 웬걸 월급도 못 받는 달이 많단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일까.

김희숙(31)씨는 아파트를 짓는 건축회사를 그만두고 이장에 들어왔다. 그는 "무늬만 친환경이 아니라 삶 자체를 친환경으로 바꿔주는 생태마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산너울 마을 조성 때는 도배와 가구 등 내부인테리어를 맡았다. 그는 "당시 하루 18시간씩 일하는 고된 일상이 반복됐지만 지금 자연 속에서 행복해하는 주민들을 보면 더 없이 기쁘다"고 했다.

다섯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양선혜(26)씨는 흔들리는 맘을 소신으로 붙잡는다. 그는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운동보다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위해 친환경적으로 마을을 꾸미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역시 전에 다니던 부동산회사의 3분의 1 수준인 월급마저 받지 못하고 있는 문요한(29)씨는 "귀농ㆍ귀촌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샤워횟수를 줄이는 등 사소한 일상에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교육생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귀띔했다.

돈은 못 벌지언정 그들의 가치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이들은 많다. 산너울 마을 주민 최맹영(59)씨는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우리 마을 주민들에게 산너울은 희망 그 자체인데, 이장의 일꾼들이 아니었다면 누리지 못했을 행복"이라고 평했다.

이장의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른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장도 내팽개치고 굳이 고생길을 택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들은 소망한다. 주민들이 누리는 행복의 씨앗이 생태공동체 지향이라는 자신들의 열매를 언젠가 맺어주기를.


현장에서


'생각대로'라는 모 이동통신사의 광고 카피도 있지만, 더 의미 있는 문구는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프랑스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의 말이다.

산너울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생각한 대로 사는 사람' 같았다. 도시의 각박한 삶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온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삶에 행복해했다.

그들이 생각한 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이장' 의 젊은이들 덕분일 것이다. 이 젊은이들 역시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해왔다. '생각한 대로의 삶'이 또 다른 삶을 낳은 셈이다.

취업 문턱에서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청년들에게 생각한 대로 살아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생각한 대로 사는 젊은이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젊은 세대의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김현우 기자




거실에 있는 화로를 보여주던 할아버지는 나를 기어이 안방까지 데려가셨다. "여기 방바닥 좀 만져봐. 뜨끈뜨끈해. 화로 뒤에 물탱크가 있어서 장작만 때면 바닥 난방까지 돼."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지난해 3월 산너울 마을로 오셨다는 할아버지의 집 자랑은 끊일 줄 몰랐다.

누가 할아버지를 이렇게 웃게 만들었을까. 또박또박 생태공동체에 대한 소신을 말하던 '이장'의 젊은 일꾼들이었다. 희망, 행복을 이야기하는 주민들을 만나고 나서야 그들 눈에 가득했던 자신감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젊은 세대는 귀촌을 먼 미래의 일로 여긴다. 하지만 친환경적인 삶을 꿈꾼다면 한번 도전해 볼만도 하다. 일단 귀촌한 지역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다면 첫걸음은 뗀 셈이다. 산너울 마을 주민들이 발견한 희망과 행복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남보라기자






줄어드는 귀농 희망 인구

농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많지만, '일자리와 소득'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실제 귀촌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도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농업ㆍ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농촌에서 거주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2006년 조사에서는 71.3%에 달했다.

귀촌 이유로는 61.9%가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를 꼽았는데, 도시민 10명 중 6명이 친환경적인 삶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귀촌을 희망하는 응답율은 2007년 조사에서는 63.7%, 2008년 62.8%, 2009년 53.0%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조사를 진행한 농촌경제연구원 김동원 팀장은 "귀촌 의향이 해마다 줄어드는 데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농촌에서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2009년 조사에서 귀촌 의향을 밝힌 응답자(795명) 중 33.2%가 귀촌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입원'을 꼽았다.'귀농ㆍ귀촌에 대한 정보'(13.8%), '이주에 필요한 자금'(12.2%)이 그 뒤를 이었다.

생태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이장'의 김영민 팀장은 "생태공동체 입주를 문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막상 시골에 가면 일자리가 불확실하다는 점 때문에 귀촌을 溯?舊?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의 귀농ㆍ귀촌 지원사업이 농업 분야에만 국한돼 있어 다른 분야에서 일하면서 농촌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김 팀장은"귀촌 희망자 중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며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자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서천=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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