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용궁사(영종도)

오우정 2008. 12. 9. 06:44

 옛이야기로 본 고찰 용궁사와 흥선대원군
| -여차하면 몸 숨기려던 사찰 용궁사
| 고찰 용궁사는 원래 구담사(瞿曇寺) 또는 백운사(白雲寺)라고도 불렸다.

이 절이 영종도(자연도)의 주산인 백운산 중턱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 신라시대 명승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다 하니 지금부터 1300여년 전이다.
| 원효는 신라시대 승려로서 오늘날 한국 불교의 횃불이라 일컬어진다.

깊은 학식과 사색을 통해 불교의 참뜻을 깨치고, 한국 고유 불교의 진리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다. 또 240여권에 이르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의 독특한 불교사상은 중국과 일본에도 전파되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 한편 조선조 고종황제의 친부 흥선대원군이 서해 바다 영종도 백운산 구담사를 자주 드나들며 소원성취를 부처님께 염원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대원군은 자신의 아들이 용상에 오르기 전 까지는 세도정치의 풍랑 속에서 몸을 드러내 놓지 않고 철저히 죽어 살았다.

이런 연유로 바닷길을 건너 산 속에 있는 이 절에 한동안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여기서 때를 기다리며 아들의 등극을 부처에게 지성을 다해 빌었을 것이다.
| 그는 절을 고치면서 관음전에 유사시 자신의 몸을 피할 수 있는 은신처로 다락방을 마련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그 흔적을 볼 수가 없다.

용궁사 경내에는 관음전, 요사채, 용황각, 칠성각 그리고 11m 높이의 에 달하는 미륵불이 있다.
| 대원군은 이 절을 중수한후 절의 이름도 용궁사로 개칭하고 현판도 친필로 써 걸었다.

흥선군은 조대비의 친정조카들인 조성하, 조영하의 도움으로 자기의 아들을 철종 서거 후에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 흥선대원군은 정권을 쥔 뒤 오랫동안 세도정치를 해오던 안동김씨 일파를 몰아내고 부패한 관리를 처벌했으며

유능한 인재를 고루 뽑고 백성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세계 정세에 눈이 어두워 10년간이나 완고한 쇄국정책을 씀으로써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늦춘 잘못도 범했다.

 그의 본명은 이하응이었다.
| 용궁사의 규모는 보잘 것 없이 작다. 그러나 이 절 경내에는 수령이 천년에 가까울 정도의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가 있어

1300여년의 고찰임을 말해주고 있다.<인천 중구 향토지>

 

 

 

 

 

 

 

 

 

 

 

 

 

 

 

 

 

 

 

 

 

 

 

 

 

 

 

 

 

 

 

 

 

 

 

 

 

 

 

 

 

 

 

                              이것이 대원군이 쓴 글씨라고한다  (그의 호가 선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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