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여행,

팔만대장경--해인사 경상도

오우정 2008. 6. 27. 09:20
강화도와 팔만대장경

        

국사교과서 내용:

   " ...고려의 무신정권이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여 39년간이나 저항한 곳이 지금의 강화도이다. 당시의 호국불교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힘을 빌어 국란을 극복하고자 팔만대장경을 제작하였고, 그것은 지금의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군의 39년간 침략으로 국토는 몽골의 수중에 넘어가고 과연 지금의 강화도에서 고려가 견디었을까? 수 만에서 수 십만에 이르는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서 고려도 역시 최소 수 만의 군대가 강화도에 주둔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는 강화도는 너무 작습니다. 그렇다면 수 십년동안 그 많은 사람들 (가족 포함) 이 먹을 양식은 어디서 조달하고 기타 생활용품은 어디서 조달했을까요? 백성들이 몽골군의 감시를 피해 조공을 바쳤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39년간 항전하기 위해서 많은 군인과 백성(전투병,비전투병,장인,기술자등), 무기제조공장, 훈련소, 지금의 강화도에 있었다고 하면 해군기지, 육군기지, 말을 키우는 목마장, 농경지, 백성거주지, 숲(당시의 연료는 나무였을 것이므로 39년간의 땔감터),조선소(몽골군이 수전에 약했다고 하니 수많은 군함을 건조했을 것이므로), 왕궁터, 성터, 절터, 대장경 만드는 곳등이 방대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과연 이러한 유적이 강화도에 있나요? 아직도 발견을 못하나요?
       또한, 강화도와 육지사이의 거리는 멀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몽골군은 그 보다도 훨씬 넓은 강을 건너 세계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들은 강화도와 육지사이의 거리보다도 더 넓고 깊은 강을 말을 타고 건너서 정복을 해 나갔습니다. 만일, 고려가 몽골에 대항한 곳에 지금의 강화도라면 몽골군이 마음만 먹는 다면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는 곳입니다. 수전(水戰)에 약하다고 합니다만, 그들이 수전(水戰)을 한 기록은 없습니다. 일본(여기서 일본이란 대만을 의미) 원정당시도 수전(水戰)에서 졌다기 보다는 갑작스런 태풍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아마 수전(水戰)에 강한 군대라 해도 태풍에는 역시 견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태풍이 오면 마찬가지 입니다. 일본원정의 실패가 수전에 약한 증거일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말을 타고 강을 건너 산을 넘어 신속한 진군을 한 그들이 언제 배를 만들고 있겠습니까? 물론, 수전을 잘 한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정복한 곳은 대부분 육지였으므로..굳이 배를 타고 점령한 곳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건넌 황하, 양자강, 멀리 중앙아시아와, 중동, 유럽의 수많은 이름있는 강들은 그들은 그냥 말을 타고 건너서 세계를 정복한 것입니다.

      몽골군이 침략때마다 수 만에서 수 십만씩 쳐들어 온다면 강화도에 고려군도 수만에서 수십만은 있어야 합니다.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릅니다만.. 더군다나, 몽골침입기간동안에 여러 고려왕이 바뀌었다면 그들의 왕릉은 강화도의 어디에 있습니까? 왜 아직도 못 찾고 있다는 소리만 하나요? 아, 강화도가 좁으니까 왕릉을 만들지 않았던가. 만일에 대비해서 아무도 못찾을 만한 곳에 만들었나요?
     하지만, 강화도가 그렇게 큰 땅인가요?  이제 역사의 설명이 안되자, 일반 백성들이 몰래 강화도에 세금을 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거꾸로, 몽골측의 기록을 보면 고려에 전쟁하러 간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고려땅에 가서 사냥을 좀 하고 오겠다고 하거나..이런 한가한 소리나 적고 있습니다. 물론 고려를 업신 여긴지도 모르겠지만..오히려 술대접을 받고 돌아오고 한 기록이나 있지, 고려를 적대적으로 표현한 곳은 없다고 합니다. 또, 39년동안 전쟁을 벌일만큼 우리가 배운 고려는 크지도 값진땅도 아닙니다. 세계각지의 기록을 보면 굳이 필요없는 곳은 몇 번 싸워보다가 그대로 포기한 곳들도 많습니다..(월남등지) 더군다나 몽골과의 대규모전투는 전혀 없고, 소수의 소속모를 몽골병과의 국지적인 전투만 있을 뿐입니다.
      몽골은 우리에 대해서 아주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홈페이지 어디엔가도 말하겠지만.. 그들도 우리입니다. 예전에 결혼을 할 때,
연지곤지를 찍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이것을 이전에는 몽골의 풍속이라고 해 버렸습니다. 몽골인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구려무덤이라고 알고 있는 고분벽화에도 연지곤지가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연지곤지는 고구려의 풍속이고, 그것을 몽골이 이어받았았다는 것인데, 도대체 역사를 왜 바로 앞도 설명하지 못하겠끔 가르치는지... 정말 엉망입니다. 그들은 고구려고분벽화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자들인가요?  아니면, 이미 고구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망해서 몽골의 영향을 받았던가요?
      다시 본 내용으로 돌아가서,
오히려 무신정권이 그들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몽골의 침입을 빌미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강화가 전란의 위험에 빠지자, 대장경의 소실을 우려해서 지금의 합천 해인사에 보관했다고 합니다라고 가르치는 것이 지금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록대로라면 몽골의 침입기간동안 황룡사탑이 불타고, 각종 문화재가 소실되고 있습니다. 지금의 경주에 황룡사탑이 소실되었다면 걸어서 2일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인 반도의 합천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을 안치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오히려 강화도가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정권이 끝나면 대장경도 의미가 없어지므로..더군다나 수전(水戰)에 약하다고 하니.. 그럼에도 영토의 대부분이 몽골의 수중에 넘어갔다고 가르치면서 굳이 적진 깊숙히 대장경을 보관 것이 설명이 되나요?

      아~ 등잔밑이 어둡다 작전인가봅니다. 강화도에 대장경이 있음을 간파한 몽골군을 속이고, 오히려 합천 해인사로 옮겼다.. 8만 대장경은 분량도 엄청난 목판입니다. 이것을 옮기는 것도 장난이 아닐텐데...아무리 한밤중에 나른다해도 몽골군이 가만히 두었을까요? 비행기가 있던 것도 아니고, 아비터를 이용한 소환일까요?
      이것을 맞다고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국사교과서의 현실입니다.
      아니면, 고려의 강토는 반도가 아니다라는 것이 맞는 것인가요? 좀 따져보고 가르쳐야지 국사를 단순히 암기하도록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외세에 침략에 대해서 우리는 도망하기에 바쁜 나라였고, 힘없는 나라였다.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발견이 안된다.. 이것이 식민사학에서 주장하는 식민사관인 것입니다.

(江華)..

     대륙 호남성(湖南省) 강화(江華)현 동남쪽- 옛 영주부(중국 고금지명사전 기록) 대륙의 기록은 강화를 이렇게 위치한 다고 기록하고 있고, 우리는 지금의 반도가 강화(강화도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강화라고 하니 강화도라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어째 기록이 서로 다른지..
        몽골침입당시 기록을 보면. 고려사절요 22대 고종 44년 9월기록입니다.

       "... 강화의 공공전답에서 쌀 2,000섬, 조 3,000섬을 수확했다. 똑같이 [우이(又以)] 최씨의 집에서 수확했다. 하음, 진강, 해령의 전답에서 수확물을 제후, 제왕, 재상인, 추밀원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차별있게 나눠줬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이(又以)라는 글자가 뜻하는 바이다. 우(又)자와 어조사 이(以)자. 또 똑같이라는 뜻- 공공전답에서 5,000섬, 또 똑같이 최의 가정에서 5,000섬 합계 1만섬을 수확했다는 말인데..
      1만섬을 수확하려면 농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계산해보자.. 1섬은 20마지기, 1마지기는 200평이므로,
1만섬*20마지기*200평=4,000만평의 농토가 있어야만 1만섬을 수확할 수 있다.  과연 지금의 반도 강화도에 4,000만평의 농토가 있는지.. 고려사절요에 엄연히 대륙 고려의 기록이 있는데, 반도에 있었다니.. 과연 우리의 역사는 무엇을 보고서 서술된 역사인지 궁금합니다.
      위에서 기록된 진강은 강소성(江蘇省) 단도현 동남. 해령은 절강성 항주부- 우리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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