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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림 식수원 오염 심각~~~~~~~~~~~~물 마시고 입원

오우정 2012. 10. 8. 09:23

[취재파일] "물 마시고 입원"…휴양림 식수원 오염 심각

SBS | 한세현 기자 | 입력 2012.10.08 08:45 | 수정 2012.10.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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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가 기자로 근무하고 있지만, 기자가 되기 전에는 수의사였습니다. 수의학의 여러 분야 중에도 '병리학'이라는 기초의학을 전공했는데, 부족한 실력에도 운이 좋아 군 복무도 국방부 '의학연구소'란 곳에서 전공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담당했던 업무 가운데 하나가 오염된 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 이른바 '수인성 전염병'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아무래도 군부대는 물을 구하기 어려운(혹은 물이 오염되기 쉬운) 산중이나 오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장병이 오염된 물을 마셔 병에 걸리는 것을 막는 게 매우 중요했습니다.

사실,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땐 내심 '물이 오염돼 봐야 별일 있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험을 거듭하면 할수록, 환자가 발생해 역학조사를 나가면 나갈수록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물은 액체라는 특성상 세균과 바이러스 같은 병원서 미생물부터 중금속, 발암물질까지 모두 다 쉽게 녹아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특히 지하수나 샘물, 우물 같이 야외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물은 오염에 더 취약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군 복무를 하는 동안에도 지하수가 '대장균'이나 '노로바이러스' 같은 병원성 미생물에 오염돼 대형 식중독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제법 많았습니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이 '수인성 전염병'과 관련된 제보를 받았습니다. 내용인즉슨, 자신의 지인이 자연휴양림에서 물을 마시고 탈이 나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입니다. 이 피해자는 가져간 생수를 다 마셨는데, 객실에 '합격' 판정을 받은 수질검사표가 붙어 있어 이를 믿고 휴양림 식수원에서 물을 떠서 마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갑자기 설사와 구토, 복통 증상이 심해져 병원 신세를 졌다고 했습니다.

제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그 피해자가 묵었던 휴양림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제보자 말대로 객실에는 '합격' 판정을 받은 수질검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검사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은 글씨로 검사 일자가 '2010년 6월 19일'로 적혀 있었습니다. 2년 전 수질결과를 그대로 붙여둔 것이었습니다.무심코 버린 쓰레기와 폐수, 살충제가 오염의 주범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동행한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며 직접 식수원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깨끗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식수원 주변에는 동물 배설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낡은 배수관에서는 화장실 오수가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쓰레기통엔 빗물덮개나 바닥막이가 설치돼 있지 않아, 쓰레기통에서 나온 물이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또, 곤충이나 뱀을 쫓기 위해 사용한 살충제도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무심코 버린 오염물질들이 비가 내리면 지하로 스며들어, 땅 밑을 흐르는 지하수까지 오염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산림청 관할 자연휴양림의 72% 오염

문제는 이렇게 식수원이 오염된 휴양림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의 도움을 받아,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전국 36개 휴양림의 수질검사 결과를 확인해 봤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휴양림 전체 36곳 가운데 23곳, 무려 72%가 최근 4년간 오염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항목도 다양했습니다. 대장균 같은 병원균은 물론, 발암물질인 비소,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물질인 사염화탄소, 동물의 분변이나 쓰레기에서 나오는 질산화합물까지 오염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세균이 기준치를 47배나 초과해 검출된 곳도 있었습니다. 결국, 식수원 관리가 전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입니다.

부실한 산림청의 지하수 관리

상황이 이런데도, 산림청은 지하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환경부의 지하수 관리와 관련한 지침인 '지하수 관리 절차서'를 보면, 불합격 시 정수처리를 하게 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산림청은 시민이 수질검사에서 부적합을 받은 식수원을 이용하지 않도록 공고를 내거나 폐쇄하는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또, 평균적으로 3주가 지난 뒤에 2차 수질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심지어 한 휴양림은 부적합 판정을 받고 6개월이 지나서야 재검사를 한 곳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동안 휴양림을 이용하는 시민은 '수인성 전염병'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습니다.

휴양림 지하수 '2년 주기'로 수질검사 실시

하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는 수질검사를 실시하는 '주기'에 있었습니다. 현행 규정상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휴양림의 지하수는 2년에 한 번씩 검사받게 돼 있습니다. 수질검사에서 한번 합격하면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하수는 땅속 깊이 있어 유입되는 수량이 제한돼 있다 보니, 한번 오염되면 정화가 쉽지 않습니다. 또, 수량에 따라 지하수가 일시적으로 희석되거나 이용객이 적은 겨울에는 일시적으로 수질상태가 좋게 나올 수 있습니다. 결국, 지속적인 관리검사를 통해 수질을 점검하지 않는 이상, 지하수의 오염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군에서는 지하수와 샘물, 우물물 같은 야외 식수원을 대상으로 매 분기마다(1년에 4차례) 수질검사를 시행해, 식수원 오염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 수질검사 주기를 줄여 지하수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지난 2007년 1월, 세계적 의학잡지 '브리티시 메디컬저널'에는 흥미로운 조사 내용이 실렸습니다. 전 세계 의학자·과학자를 대상으로 '지난 160년 동안 현대의학이 이룬 가장 위대한 성과'가 무엇인지 물은 것입니다. 결과는 예상외였습니다. 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손꼽히는 '항생제'를 제치고, '하수도의 발전'이 1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브리티시 메디컬'은 전혀 놀랍지 않은 매우 당연한 결과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과거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던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사라진 것은 하수도가 설치되고 깨끗한 수돗물이 공급된 이후부터였다. 20세기 들어 인간의 평균 수명은 약 35년 늘어났는데, 이 중 30년 정도가 하수도의 발전 덕분인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의 더 타임스도 인류가 고통받는 질병 중 80%는 수인성 질병이며, 아직도 수인성 질병으로 하루에 14,000여 명이 사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나머지 순위는 2위 항생제, 3위 마취, 4위 백신, 5위 DNA 구조발견 등의 순이었습니다.)

지난해 자연휴양림을 찾은 시민은 287만 명에 이릅니다. 또, 해마다 이용객은 10%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휴양림이 잘 갖춰져 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더럽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수도'가 생명연장의 1등 공신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눈에 띄는 외경보다 보이지 않는 그래서 더 중요한 곳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한세현 기자vetman@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