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일붕사

오우정 2010. 4. 1. 11:17

 

 

 

 

 

 

 

 

 

 

 

 

 

 

 

 

     석굴에다가 법당을 조성하였고 앞에 출입문을 만들었다

 

 

 

 

                                         천혜의 자연 요건을 갖춘 봉황산에 소개한 일붕사는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으며

                                 서기 727년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현재 일붕사의 전신이다

 

 

 

   석굴 내부

  일붕사 창건유래
이곳은 약 1330년 전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할때 최고의 격전지였으며 당시 왕군이 봉황대 영역 안에 이 지역의 수많은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태종 무열왕의 삼왕자가 계셨던 궁소 봉황대의 사찰에서 비로자나불을 안치시켜 호국 일념으로 성덕왕의 덕을 기렸고 성덕대왕이 봉황대의 산세가 빼어남과 선당의 얼이 베인 곳을 천추만대에 기념하자는 뜻에서 자신의 왕호를 내려 성덕사라는 귀족적 사찰을 지었으니 과히 그 명성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덕사도 이조 성종25년 국령으로 불사 33개소를 회합함으로서 그 영향을 받아 승려를 학대하고 사찰을 파괴함으로서 봉황대 성덕사는 어쩔 수 없이 사찰을 궁류면 운계리 팔사곡 자사산으로 옮겨 정수암으로 그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 후 (148년전)에 장사곡 출신의 어떤 인물이 들어와 승을 축출하고 암자를 파괴할 때 쇠망치로 수없이 내려쳐도 미륵불상 한불이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주승이 범상치 않은 일이라며 그 불상을 업고 합천군 연호사로 도망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연호사 불상 중 일부분이 성덕사 불상이라고 전해오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암자로 있다가 1934년 8월 26일 당시의 면장이 산주와 더불어 봉황대의 덕경을 도우기 위하여 벚꽃나무를 심고 관세음보살상과 여래불상을 모셨으나 소실되어 다시 이야용 스님이 법당을 짓고 성덕사라 하였다

     석굴내부

 

 

 입막고 눈감고 귀막는건 아프리카에도 이런모습을한 조각상을 보았다

일본의 사찰에도있구

 

 

 

 

 그러나 1984년 10월 24일 누전으로 인하여 또다시 성덕사법당이 완전 소실되었으나 1986년 7월 26일 사단법인일붕선종회 (지금의 재단법인 일붕선교종) 창종주 일붕 서경보 종정 큰스님이 혜운 주지스님을 부임케하여 이 산 이름이 봉황산이라 산의 기가 너무 세어 사찰이 부지 못하니 기를 줄이기 위해 굴을 파야 한다고 하시므로 주지스님이 불사를 이룩, 사찰명을 일붕사로 명명하여 현재는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 456.2m²(138평)과 297.5m²(90평) 규모의 동굴 무량수전이 완공되어 불자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 도량으로 하루 평균 2백여명의 불자들이 오고 있다. 기상이 천태만상으로 기기 절묘한 봉황대가 있는 궁류면은 의령군의 북쪽에 위치하는 면으로서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봉황산에는 이미 신라시대에 불법의 터전이 이룩되어 일찍이 신선들이 하늘에서 봉황을 타고 내려와 약수를 마셨다는 봉황대를 비롯하여 봉황의 머리를 닯았다는 봉황암이 일명 봉두암으로 되었고 봉황단, 봉황암, 봉황루, 석문, 사무천 등의 명소가 즐비하게 있다. 일붕사는 사찰대지 16,529m²(5천평), 임야 99,174m²(3만여평), 신도수 2천여세대, 석굴 대웅전 456.2m²(138평), 석굴무량수전 297.5m²(90평), 제1요사, 제2요사, 조사전, 약사전, 북극전, 나한전, 산신각, 종각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 사찰소개 - 대웅전, 무량수전, 약사전, 종각, 산신각, 북극전, 관세음보살 입상, 나반존자
* 기타 - 납골당, 사리탑, 부도탑, 일붕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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