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낙산사

오우정 2009. 1. 16. 05:59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른다는 낙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기도를 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나 보살이 가르쳐 준 곳에 법당을 지은 후 낙산사라 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는데, 현재 원통보전을 비롯하여 종각·일주문·천왕문·선실·승방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관세음보살을 보신 원통보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의 건물이다.

절 옆에는 의상이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난 관음을 만나 불당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자리에 홍련암이 있고, 의상이 앉아서 참선했다는 자리에 세운 의상대가 있다.

낙산사는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의 사찰이다.

 

 

 

 

 

 

 

 

 

 

 

 

 

 

 

 

 

 

 

 

 

 

 

 

 

 

 

 

                                  한가지 소월을 빌면 들어준다는 길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로서 해변에 위치하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낙산은 산스크리트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유래한 말이며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의 하나인 낙산사는 671년(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낙산사 창건 이후 이 절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으로는 원효(元曉), 조신(調信), 사굴산파의 개산조 범일(梵日)의 이야기 등이 전하고 있다.

 이 절은 858년 범일에 의해 중건된 후 여러 차례 불타 중건이 거듭되었으나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복구해서 원통보전(圓通寶殿)·종각(鐘閣)·일주문(一柱門)·선당(禪堂)·승당(僧堂)·객실(客室) 등의 건물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유적은 낙산사동종(보물 제479호), 낙산사7층석탑(보물 제499호), 낙산사홍예문(강원도유형문화재 제33호),

 낙산사원장(강원도유형문화재 제34호), 낙산사홍련암(강원도유형문화재 제36호), 양양낙산사사리탑(강원도유형문화재 제75호) 등이 있다.

1977년에 화강암으로 만든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입상(海水觀音立像)이 있으며, 절 앞에는 의상의 전설이 담긴 홍련암 등이 있다.

그러나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큰 산불로 낙산사원장·원통보전·일주문·낙산사홍예문 등 주요 전각과 낙산사동종이 소실되고,

낙산사 7층석탑이 일부 손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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