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와 꽃나무

수수꽃다리

오우정 2021. 4. 18. 07:28

수수꽃다리는 아름다운 나무 이름 뽑기 대회라도 한다면 금상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수수꽃다리는 ‘꽃이 마치 수수 꽃처럼 피어 있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수수꽃다리는 북한의 황해도 동북부와 평남 및 함남의 석회암지대에 걸쳐 자란다. 키 2~3미터의 자그마한 나무로 하트형의 잎이 마주보기로 달린다.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다가 원뿔모양의 커다란 꽃대에 수많은 꽃이 피어 향기를 내뿜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이 나무의 가치를 알게 된다.

수수꽃다리는 더위를 싫어하므로 주로 중북부지방에서 정원수로 흔히 심는다. 현재 한국에는 자생지가 없으며, 지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수수꽃다리는 남북분단 이전에 북한에서 옮겨 심은 것이다. 수수꽃다리는 개회나무, 털개회나무 등 6~8종의 형제나무를 거느리고 있는데, 서로 너무 닮아서 이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낸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꽃을 좋아한 옛사람들은 머리 아프게 따로 구분하지 않고 합쳐서 중국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여 정향(丁香)이라 불렀다.

《속동문선(續東文選)》1) 에 실린 남효온의 〈금강산 유람기〉에는 “정향 꽃 꺾어 말안장에 꽂고 그 향내를 맡으며 면암을 지나 30리를 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산림경제》 〈양화(養花)〉 편에는 “2월이나 10월에 여러 줄기가 한데 어울려 난 포기에서 포기가름을 하여 옮겨 심으면 곧 산다. 4월에 꽃이 피면 향기가 온 집 안에 진동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화암수록》 〈화목구등품〉의 7품에는 “정향(庭香)은 유우(幽友), 혹은 정향이라 한다. 홍백 두 가지가 있는데, 꽃이 피면 향취가 온 뜰에 가득하다”라고 했다.

수수꽃다리는 이렇게 진가를 알아본 선비들이 정원에 조금씩 심고 가꾸어 왔다. 하지만 개화 초기에 들어서면서 라일락이라는 서양수수꽃다리(학명 Syringa vulgaris)의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된다. 라일락이 일본에 1880년경에 들어왔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수입 수수꽃다리가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라일락은 향기가 조금 더 강하고 키가 약간 크게 자라는 것 외에 수수꽃다리보다 더 특별한 장점은 없다. 이 둘은 꽃이나 향기가 비슷하여 거의 구분이 안 된다. 그래도 쏟아지는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왔다는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라일락은 수수꽃다리를 제치고 공원이나 학교의 정원수로 자리를 잡게 된다.

라일락은 유럽 사람들도 좋아하는 꽃이다. 수많은 원예품종이 있고, 보통 연보라색과 흰색을 기본으로 진한 보라색까지 다양하다. 5월 중순의 봄날, 라일락은 연보라색이나 하얀 빛깔의 작은 꽃들이 뭉게구름처럼 모여 핀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도 라일락 향기는 금방 코끝을 자극한다. 어둠이 내리면 향기는 더욱 강해진다.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젊은 연인들에게 친숙한 꽃이고, 바로 그들의 향기다. 영어권에서는 라일락(lilac)이라 부르며 프랑스에서는 리라(lilas)라고 한다.

라일락의 원예품종 중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1947년 미 군정청에 근무하던 엘윈 M. 미더는 북한산에서 우리 토종식물인 털개회나무 씨앗을 받아 본국으로 가져갔다. 이후 싹을 틔워 ‘미스킴라일락’이라 이름 짓고 개량하여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시장에 퍼져나갔다. 유럽 라일락에 비해 키가 작고 가지 뻗음이 일정하여 모양 만들기가 쉽고, 향기가 짙어 더 멀리 퍼져 나가는 우량품종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것을 역수입해다 심는 실정이다. 종자확보 전쟁에서 한발 늦은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오래전부터 향료와 약재로 널리 알려진 정향(丁香)이 또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향이 아닌 늘푸른나무로 열대의 몰루카 제도가 원산인 다른 나무다. 이 나무는 꽃봉오리가 피기 전에 채취한 후 말려서 쓰며, 증류(蒸溜)하여 얻어지는 정향유는 화장품이나 약품의 향료 등으로 쓰임새가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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