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공림사

오우정 2010. 7. 12. 10:18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 11
전화
043-833-1029

 낙영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공림사는 신라 48대왕 경문왕(861~874)때 자정선사(慈淨禪師)가 법력이 있다는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해, 경문왕이 선사의 인물됨을 알고 국사(國師)의 칭호와 자정선사가 주석(住錫)하는 절에 공림사의 이름을 지어 ‘공림사(空林寺)’라 쓴 현판을 내렸다고 전한다

                                           공림사의 창건 연기에 대해서는 먼저 「낙영산공림사사적비(落影山空林寺事蹟碑)」에 실려 있는 내용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1688년(숙종 14)에 경일(敬一)스님이 찬술한 이 비는 공림사 역사를 기술하고 있는 현존 최고의 자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적비는 지금도 사찰 경내에 세워져 있어 자료적 가치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그러면 사적비의 내용 가운데 창건 연기와 관련된 부분을 그대로 옮겨 보도록 한다.

옛날 신라 경문왕(景文王) 때에 고승 자정(慈淨)이 있었는데, 그는 도덕과 탁월한 수행력으로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왕도 그의 명성을 듣고 흠모하다가 그에게 가서 국사(國師)로 모시고 아울러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의 자리를 더해 주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 자리를 하찮게 여기고 자리에서 물러나 이곳에 띠로 이은 집을 짓고 숨어 살았다. 왕이 그 같은 내용을 전해 듣고는 보방(寶坊, 사찰을 말함)을 지어 주었으며, ‘공림사(空林寺)’라는 사찰 이름도 내려 주었다. 이후 중국 명(明)나라 건문(建文) 연간에 이르러 함허당(涵虛堂) 득통화상(得通和尙)이 자정스님의 자취를 흠모하면서 법당과 여러 요사 등을 새로 짓고 면모를 일신하니 사람들이 ‘함허의 도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녹나무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