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金永郞, 1906년 1월 165일- 1950년 9월29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전러남도 강진에 있는 대지주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강진보통학교를 다니면서 13세의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1년만에 사별하였다.
졸업하고 1917년 휘문 의숙에입학하였으나 1919년 3.1운동때 학교를 그만두고
강진에서 의거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서 공부하다가 간토 대지진때 귀국하였다.
1926년에두번째로 결혼하였다. 1930년 정지용 박용철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에 가입하여 동지에 여러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이 무렵 쓴 시이다. 1935년 첫째 시집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이후 두어차례 붓을 꺾기도 하였으나 해방 후에는 시작 활동에 전념하다가
한국전쟁당시 서울을 탈출하지 못하고 포탄 파편에 맞아 49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목적의식이 담긴 시를 거부하고 이상적인 순수서정시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어 속을 흐르는 조용한 저항의식이 담긴 민족주의적 시를 쓰기도 하였다.
주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섬세한 시적 표현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