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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죽교와 표충비(북측)

오우정 2008. 7. 2. 17:30

옛 이름은 선지교(善地橋)이다.

 

개성시 선죽동 자남산 동쪽 기슭의 작은 개울에 있으며, 919년 고려 태조가 송도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하천정비의 일환으로 축조한 것이다.

 

 

 왼쪽의 다리가 원래것이나 정몽주의 후손이 난간을 세우고 오른쪽에 다시 다리를 놓아서 건너가게했다

  선죽교는 김잠곡(金潛谷)의 〈송도구지〉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려말 정몽주

 

이방원 보낸 조영규(趙英珪) 등에 의해 이곳에서 철퇴를 맞아 숨진 사건 이후에 유명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1780년(정조 4) 정몽주의 후손인 유수 정호인(鄭好仁)이 주위에 돌난간을 설치하고 별교(別橋)를 세워 보호했다.

  선죽교의 석재(石材) 중에는 부근 묘각사(妙覺寺)에서 나온 다라니당(陀羅尼幢) 일부가 끼어 있다.

다리 동쪽에는 선죽교라는 3자가 한호(韓濩)의 글씨로 씌어진 비가 있고, 다리 서쪽에는 비각(碑閣) 안에

1740년(영조 16) 어제어필의 포충비(褒忠碑)와 1872년(고종 9) 어제어필의 표충비(表忠碑)가 있다.

또 부근에는 1641년(인조 19)에 부임한 유수 목서흠(睦敍欽)이 건립한 읍비(泣碑)가 비각 안에 있는데 여기에는 "一大忠義萬古綱常"이라 새겨져 있다.

 이 읍비 앞에는 1797년 유수 조진관(趙鎭寬)이 찬한 녹사비(錄事碑)와 1824년(순조 24) 유수 이용수(李龍秀)가 찬하고 신위(申緯)가 쓴 녹사비도 있다.

 돌다리 앞쪽 중앙에 붉은끼가있는것이 정몽주가 흘린피자국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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