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여행,

수덕사-1------------충청도

오우정 2008. 4. 18. 15:15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고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수덕사 입구는 이렇게 상가들로 번창하다

상가의 길이가 족히 100미터는 되보였다

 

 

 아직도 가는중.................................

 

 도립공원 안내도

 

 왼 벼락맞은 대추나무는 많은지.........................

 

 입구의 일주문 기둥은 석재로되어서 조금은 실망

 

 일주문 현판

덕숭산 수덕사(德崇山修德寺)라 쓰인 수덕사 일주문은 도톰하게 깎은 돌기둥 두 개에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덕숭산수덕사’라고 쓴 현판은 손재형(孫在馨)의 글씨이며, . 일주문엔 멋진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 네군데나 있어 잠시 눈길을 멈추게 해준다. 안쪽 현판엔 동방제일선원(東方第一禪院)이라고 쓰여 있는데 소전 손재영님의 글씨란다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다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천정

 

문헌에 나타난 백제 사찰로는 흥륜사(興輪寺), 왕흥사(王興寺), 칠악사(漆岳寺), 수덕사(修德寺), 사자사(師子寺), 미륵사(彌勒寺), 제석정사(帝釋精寺) 등 12개 사찰이 전하지만 수덕사만이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백제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 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문헌에 수덕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 와 '속고승전(續高僧傳)'으로 백제의 고승 혜현(惠現)이 수덕사에서 주석하며 법화경(法華經)을 지송하고 삼론(三論)을 강(講)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수덕사의 사격(寺格)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554~597년(백제 위덕왕) - 지명법사가 수도 사비성 북부에 수덕사를 창건.
601년(백제 무왕 2) - 혜현법사가 수덕사에 처음 주석하며 <법화경>을 독송하고 <삼론>을 강론함.
627년(백제 무왕 28) - 혜현이 58세로 입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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