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철. '후~후~' 불면서 마시는 뜨거운 육수 한잔에 속이 시원해진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도 어느새 몸 속으로 숨어버리는 느낌이다. 이열치열이 따로없다.
쫄깃한 면발에 새콤 달콤한 양념, 오돌오돌 씹히는 회는 또 다른 별미이다. 함흥냉면!
물 냉면인 평양냉면은 전국 곳곳에 유명한 집들이 널려있다. 반면 함흥냉면은 '오장동'만 떠오른다. 이곳엔 소문난
함흥냉면집이 20m안에 3곳이나 몰려 있다. 단골이라면 곧장 직행할 수 있지만 명성만 듣고 간다면 '어? 3곳이나 있네'라며 순간 멈칫한다.
과연 어디를 가야만 제대로 된 맛있는 함흥냉면을 먹을 수 있을까.
장단점이 있어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백년 맛집'은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 3곳에 전문가 3인으로 구성한 맛평가단을 몰래 투입했다.
오장동 함흥냉면
일반인들에게 '오장동 함흥냉면'하면 떠오르는 집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맛평가는 아쉽게도 '명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를 받았다. 면은 좀 질긴듯하지만 굵기는 무난하다.
조금만 두면 면이 굳어서 뭉쳐지는데 고구마 전분 이외에 다른 것을 섞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되도록 빨리 비벼 먹어야 한다.
육수와 회(꾸미)에 대해서는 평가단 모두 아쉽다는 반응이다.
육수는 본연의 맛보다는 간장 냄새가 날 뿐 아니라 다양하고 깊은 맛이 없다.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회에 대해서도 구본길 교수는 "약간 퍽퍽한 느낌을 주고 양념이 속속 배이지 않아 상큼하다거나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대신 양념은 좋은 평가를 얻었다. 적당히 맵고 향신료의 자극이 덜해 먹기 편했다는 반응이다.
■ 총 평
테이블의 배열이 협소해 불편했고 종업원들의 응대도 부드럽지 못하다.
참기름의 매끄러움과 향기가 면발의 부드러움과 고소함을 더하게 한다. 대체로 평범한 맛으로 소신없이 먹기에 무난하고,
외국인들에게도 추천할만한 곳이다.
명성에 걸맞는 노력이 아쉽다.
신창면옥
3곳 중 가장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가단들로부터는 가장 주목을 받았다. 으뜸 점수를 받은 부문은 회(꾸미).
육주희 편집장은 "쫄깃 쫄깃하면서도 오독오독한 식감과 적당히 간이 배어 있어 먹기에 좋았다"고 말했다.
양념도 마늘 등 향신료의 톡쏘는 맛이 강해 다소 자극적이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기호에 맞을 듯 하다.
면은 100% 고구마 전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이유가 오래 두어도 엉켜붙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는 전분 이외에 다른 첨가재가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면발은 세 곳 중 가장 질기다. 육수는 가장 아쉬운 부문.
육류 특유의 냄새와 짠맛, 마늘 향이 강해 3명 모두에게 다소 거부감을 받았다.
■ 총 평
나무 테이블과 정돈된 실내는 대중식당으로 무난하다. 서비스는 일반적이어서 고객에 대한 가치부여를 할 수 없었던 게 아쉽다.
회는 질감이 좋지만 반대로 육수에서 나는 냄새와 짠맛은 빨리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 또 면도 첨가재를
넣지 않고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집과 달리 후불이라는 점은 좋았다.
오장동 흥남집
오장동에서 가장 오랜된 집. 1953년에 오픈햇으니 벌써 56년째다.
'서울의 함흥냉면집 3대 명가' 중 한 곳으로 꼽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다. 평가단도 마찬가지였다.
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들었는데 다른 집과는 달리 메밀도 섞었다. 면발은 소면 굵기로 먹기에 적당하다.
그러나 양은 3곳 가운데 가장 적어 여성에게는 알맞을 지 모르지만 남자들은 사리를 추가해야 할 듯하다.
육수는 고기 냄새가 거의 없는데 짠맛이 약간 강한 편이다. 깊이 있는 맛과 깔끔한 감칠 맛이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는 지적이다.
회와 양념 부문에선 의견 차이가 심했다.
육주희 편집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액체와 참기름이 흥건하게 깔려 있어 보기에도 맛이 떨어진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건다운은 "거친 느낌의 양념과 잔뜩 뿌려진 참기름을 통해 정통 함흥냉면을 먹는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 총 평
다른 두 곳에 비해 건물도 낡고 테이블 간격이 좁아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참기름이 너무 많이 들어간 탓에 면이 입안에서 미끌거려 거북하다.
전통 함흥냉면 맛을 아는 나이 드신 분은 좋아하겠지만 젊은이들의 입맛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듯하다.
너무 장사가 잘된 탓일까. 3곳에서 서비스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으니 그냥 조용히 먹고 가라"는 듯 종업원들의 표정은 무뚝뚝하다.
'손님 대접'이라는 개념은 눈꼽만큼 찾아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신창면옥을 제외하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선불을 요구한다.
이곳 뿐 아니라 예지동 곰보냉면과 명동 함흥면옥도 무조건 선불이다.
왜냐고 물었더니 "워낙 바빠서 나갈 때 받으면 입구가 북적거린다. 선불을 받아야만 그래도 번잡함이 덜하다"고 한다.
손님들보다는 주인들의 편의주의가 우선이라는 말.
'아직도 꾸미가 홍어라고 믿니?'
사람들은 함흥냉면에 올라가는 회(꾸미)가 '홍어'라고 착각하고 있다.
신문 기사나 블로그들의 냉면집 소개 글을 보면 홍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러나 '홍어인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 가오리를 쓴다. '홍어의 사촌'인 간재미(서울 명동함흥면옥)를 넣는 곳도 있다. 물론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 국산은 꿈도 못꾼다.
속초 아바이마을에서는 원래의 모습대로 명태나 가재미를 올리기도 한다.
그러면 왜 홍어라고 착각할까.
다음은 곰보냉면 배정지 사장의 말씀. "1960~70년대 홍어가 백령도에서도 많이 잡혔는데 지금의 가오리보다 훨씬 값이 쌌어.
물론 명태보다도 쌌고. 그래서 명태 대신 홍어를 꾸미로 올렸자.
그런데 80년대 들어 어획량이 줄고 값이 폭등하더라고.
안되겠다 싶어 가오리나 간재미로 바꿨지. 그런데 뻘겋게
무쳐놓으면 홍어나 가오리나 간재미나 별 차이가 없다보니 예전의 홍어를 기억하는 손님들의 입을 타 지금껏 홍어회로 믿고 있는 모양이야."
수입 홍어를 올리는 곳은 없을까. 명동함흥면옥 박영철 사장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식감이 가오리나 간재미보다 못하다"고 잘라 말했다.
또 한가지는 함흥냉면집 메뉴판엔 '홍어회 무침'이 있다.
'이것이 함흥냉면의 꾸미로 올라가겠구나'라고 짐작해 그렇게 믿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위로 짜르면 면 맛이 떨어진다?
'가위는 면발의 천적'이라는 사람이 있다. 가윗날이 닿은 면발에서 쇠냄새가 난단다. 정말 모르는 소리다.
그러면 가위와 같은 성분인 스테인레스로 만든 젓가락과 그릇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잘라도 될까? 취향에 따라 다르다.
다만 국수는 옛부터 '장수의 상징'이다. 백일상에 돌잡이로 올리는 이유가 오래 살기를 원하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한가닥으로 만든 소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또 한가지. 이빨로 자르는 맛도 맛이란다. 함흥냉면 마니아들이 한결같이 "가위는 노(No)"를 외치는 까닭이기도 하다.
결국 가위를 쓸지 말지에 대한 판단은 "니맘대로 하세요"다.
예지동 곰보냉면
오장동 흥남집·명동 함흥면옥과 함께 서울의 3대 함흥냉면집으로 꼽힌다.
서울 종로 4가 끝자락인 예지동, 1970년대의 시장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계 골목 안에 있다.
곰보는 말그대로 '얼굴 흉터'를 말한다. 1961년 처음 이 집을 오픈했던 함흥 출신 사장 부부의 얼굴에 흉터가 있어 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배정지(65)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원주인 때도 장사가 잘돼 아주 유명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영을 잘못해서 망하게 된 것을 제가 인수했죠. 그때가 1987년 10월인데 이듬해 2월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함흥냉면의 명가로 꼽히지만 배 사장은 함흥과는 상관없는 경북 안동출신이다.
장안에 소문난 맛은 30년째 배 사장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조완영(52) 주방장의 공이라는 것이 배 사장의 설명.
한우 사골등을 넣고 끊인 육수는 고소하다.
육수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르헨티나산 가오리를 사용하는 회(꾸미)의 양은 보통이지만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고 달지도 않다.
48년간 시계 골목을 지키던 곰보냉면이 곧 이사를 간다. 재개발 탓에 현위치 맞은 편의 세운스퀘어 4층으로 빠르면 오는 9월 옮긴단다.
명동 함흥면옥
명동에서 45년째 영업 중이다. 원래 함흥이 고향인 실향민 사장이 처음 문을 열었다.
지금은 그의 외조카인 박영철(60)사장과 동생 박민철(50)씨가 운영하고 있다.
서울의 함흥냉면 3대 명가답게 졸낏한 면발, 짭짤한 육수, 오독오독 씹히는 꾸미 등 나무랄데 없다. 양념도 달콤해 먹기 좋다.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다른 냉면집과 달리 젊은 손님들이 많은 게 특징.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이 적어 남자들은 사리를 추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강북 유명 냉면집 중 으뜸이다. 육수가 비면 종업원들이 손살같이 달려와 따라준다.
너무 자주 채워져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 '손님이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분위기도 냉면집 같은 느낌이 없을 정도로 좋다. 휴지도 일회용 물수건처럼 생긴 개인용 휴지를 내놓는다.
그래도
박영철(60)사장은 "종업원들에게 그때 그때 교육을 시킨다.
손님들의 반응이 좋지만 그래도 아직은 멀었다"고 말한다. 명동 충무김밥집 골목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있다.
속초 단천식당
3대째 냉면 맛을 이어오고 있다. 단천은 식당을 처음 연 김화종(작고) 할아버지의 고향이다.
함경북도 단천군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후 남으로 내려와 강원도 속초 아비아미을에 정착한 후 1970년대 초 개업했다.
이후 며느리 윤복자씨에 이어 지금은 손자 김한성씨(40)가 운영하고 있다.
동해에서 잡힌 가재미(7000원)와 명태(6000원)를 꾸미로 올리는 것이 서울과 다른 점이다.
부산 내호냉면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피난촌인 부산시 남구 우암동에서 문을 연 후 57년째 한 자리에서 맛을 이어오고 있다.
함경남도 흥남시 내호동 출신인 이영순(작고)할머니에 이어 정한금(작고)-유상모(62)-유재우(30)씨까지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이 집은 육수 맛이 뛰어나다. "이틀에 한번 한우 사골에 마늘과 생강 등을 넣고 7시간 이상 고아서 만든다"는 것이
유상모 사장의 설명이다. 부산 밀면집의 원조로도 유명하다
대구 대동면옥
대구에서 '이 집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만큼 유명하다.
1951년 문을 열었지만 여러번 주인이 바꼈고 현재는 1988년 인수한 이옥자(54)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시간대를 잘못 잡으면 번호표를 받고 30분 정도는 줄을 서는 것이 기본이다.
섬유회관에서 서성네거리 방향으로 가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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